
후쿠오카 3일차. 날씨가 나아지길 간절히 바랐으나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친 추위가 계속 이어졌고 급기야는…



눈보라 경보까지 내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전날보다 훨씬 훨씬 훨씬 추웠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날씨가 있을 수 있는 거냐고… 이 세상 바람이 아니었다.
12/23 : 타워레코드 / 스프카레 / 오호리 공원 / 웨스트우동 (우동)

버스를 기다렸다간 정말 바람에 날아가 한국에 도착해 버릴 것 같아서 얌전히 전철을 타기로 했다. 원래 오호리 공원 먼저 가고 싶었는데 이 날씨에 아침부터 공원은 무리일 것 같아서 오타쿠의 피난처 타워레코드로 향함. 미세스 앨범 있나 보고 싶었고 뮨경씨한테 부탁받은 앨범이 있는지 살펴보러.


타워레코드는 파르코 백화점 6층에 있었다.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어 편했다. 타워레코드 간판이 보이니까 미세스 앨범을 실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주 신이 났다. 한국에서 주문하려고 하니 구매대행을 이용해야 해서.. 아니 앨범도 안 파는지 몰랐어 나는..

이 앨범 너무너무 갖고 싶었다! 아니면 최근 나온 잡지라도! 그 잡지 헤메코 괜찮더라고? (헤메코에 매우 민감한 사람)


우선 본진 코너부터 쓰윽 훑어준다. 디비디나 이런거 거의 다 있다. 앨범도 디비디도 많아서 방탄 코너가 두 개나 된다. 좋구만.. 괜히 흐뭇하다.



자.. 그리고 호시노겐 앨범을 찾으러 왔다. 못 찾아서 한참 헤매다가 결국 점원에게 부탁함. 저 앨범이 데뷔 앨범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구하기 힘들다고. 근데 여기도 없었다. 저 사진 언니한테 보내면서 호시노겐 팬들 데뷔앨범에 뭐 있는거야..? 이렇게 보냈는데 아무래도 옛날 앨범이라 그런 것 같다며 ㅠ ㅠ


히히히. 미세스 앨범은 거의 다 있었다. 내가 살까 말까 고민 엄청 했던 유토피아 디비디도 있었음 ㅠ ㅠ 근데 가격이 라쿠텐인가 거기서 봤던 것보다 훨 비쌌다. 저 옆에 있는 인더모닝투어도 좋았지.. 사실 앙상블 투어 디비디 있으면 겟할 생각이었는데 그건 없었다. 소란지부터 앨범 쭉 있어서 너무너무 너무 좋았다 ㅠ 내한 좀 해주라.. 아니면 티켓피아(ㅗ)를 버려줘.. 제발.. 미세스 보고싶어.. 라이브 듣고싶어.. 외국팬에게도 기회를 줘..
암튼.. 갑자기 구구절절 먹먹문이 됐는데..
파르코점에서는 원하는 앨범들을 구하지 못함. 하카타역 쪽에 타워레코드가 하나 더 있다고 하여 다음날이나 다다음날 거기도 가기로 했다. 한국에서 앨범 구하기조차 힘든 덕질.. 이게 맞아?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나오니까 눈이 더 내림. 저 빅에코 간판.. 인터넷에서 하도 많이 봐서 넘 친숙. 아 한 곡 불러제끼고 올 걸 그랬나? 한국 코노에는 미세스 노래 몇 곡 들어오지도 않으니까.. ㅜ


텐진 애플스토어와 돈키를 지나 쭉쭉 걸어갔다. 장갑을 끼고 나와서 다행히 우산 든 손이 그리 시렵진 않았다. 정말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다.




젠장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가게를 못 찾겠는 거다. 그래서 바람을 등지고 구글맵을 다시 보니 건물 2층이라고 해서 이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에 있었다! 베지스파!

여기는 스프카레 파는 곳이다. 사실 스프카레는 삿포로 음식이긴 한데.. 일본 오기 전 본 고독한 미식가에서 이노가시라 상이 스프카레를 넘 맛있게 드시는 걸 보고 급 일정에 끼워넣기로 결정. 스프카레를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아주 기대가 됐다.

이렇게 태블릿으로 슥슥 주문을 한다. 하나도 어렵지 않음. 채소랑 닭고기가 들어있는 것으로 주문했다. 고독한 미식가에서 그렇게 생긴 스프카레가 나왔기 때문에! 주문하고 좀 앉아있다가.. 혼자 왔는데 4인석에 무심코 앉아버렸단 걸 깨닫고 1인석으로 옮겨도 되겠냐 물었다. 가능하다고 하면서 식기도 같이 옮겨주심. 고마버요!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음식 등장. 이것이 스프카레라는 것이로구나. 진짜 묽다. 그리고 채소들이 들어있다. 구운 채소는 항상 옳지. 연근이 이렇게 맛있는 건지 처음 알았다. 또 나는 국물에 빠진 단호박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단호박도 맛있었다. 다른 채소들도 다 좋았다. 오히려 닭고기보다 채소가 맛있어서 야채 카레로 주문해도 괜찮을 뻔했다! 야채 카레에는 오크라가 들어 있다는데 궁금하다. 암튼 구운 채소 특유의 감칠맛이 풍부해서.. 강추 강추 강추!!! 이 맛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추운 날 호로록 먹는 스프 카레의 맛은 그야말로 환상! 질감은 묽지만 맛은 진하다.

시간이 없다면 쪼개서라도 가 보라고 하고 싶은 곳. 그럴 가치가 있는 곳. 주인장도 매우 친절했다. 더듬더듬 개떡같은 일본어로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심. 후쿠오카에 또 온다면 꼭 다시 오고 싶은 곳. 접객도 맛도 좋았다. 인터넷 보니 한국인들도 종종 오는 것 같은데 내가 갔을 땐 전부 일본인들이었다. 현지인들에게도 인기인 듯하다.

따뜻한 곳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으니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추운 날씨를 뚫고 오호리 공원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그래서 급 버스를 타고 오호리 공원으로 향함.


눈이 끊임없이 내렸고 바람도 세게 불었다. 눈이 가로로 내리다 별안간 구름이 걷히고 해가 떴다가 다시 눈이 왔다. 알 수 없는 날씨.. 그리고 스프카레를 너무 든든하게 먹은 나머지 엉뚱한 자신감이 샘솟아버린 나.




신기하리만치 사람이 없었던 오호리 공원. 당연하지. 누가 이런 날씨에 공원을 오겠니. 하지만 그 덕분에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손이 너무 시려서 장갑을 끼는 바람에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가 없었다. 장갑을 낀 채로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니까 손도 안 시렵고 짱편했다. 아 카메라 가져가길 잘했다.

다리를 건너서 쭉 걸어가면 일본정원이 나온다고 하는데… 바람 때문에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갈 수가 없었다. 나는 똑바로 걷고 싶은데 바람 때문에 자꾸 사선으로 가게 됨.. 일본정원까지 도저히 갈 수가 없어서 중간에 돌아나왔다. 눈보라 경보 속 오호리 공원이라니.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구만. 난 그렇게 껴입고도 죽을 것 같았는데 앞에 있는 사람 장갑도 안 꼈더라… 일본인들 원래 추위에 강한거야?


갑자기 해 떴음. 어쩌라는 거냐 도대체?

옆에 후쿠오카 성터가 있어서 들어갔는데 갑자기 쌀알만한 얼음덩어리가 내리기 시작. 저기.. 진심으로 왜 이러는 거야?


구글맵에는 멋진 사진이 있었는데 그 스팟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스프카레 파워가 떨어진 건지) 미친 듯이 추워서 급 내려왔다. 여기도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고. 아마 길가에 서있던 공사 관계자들은 도대체 저 사람은 이 날씨에 저길 왜 가는거냐 했을 거임. 우산대가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의 강풍에 맞서며 도로 내려왔다. 버스 타러 후다닥..



숙소 근처에 내릴 때쯤엔 눈이 더 많이 왔다. 사람들이 우산을 무슨 방패처럼 쓰고 다님. 물론 나도. 바람이 너무 불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산이 너덜너덜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후쿠오카 따뜻하다면서요 님들아.. 이게 뭐예요..

타마고 산도 먹고 싶어서 이 추운 날 편의점 가는 사람. 옆모습이 무슨 침낭을 입고 다니는 것 같은데.. 저렇게 입지 않았으면 사달 났을 거다.

패밀리마트였나 갔는데 타마고산도가 없었다. 날씨도 춥고 하니 여기에 없으면 적당히 포기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 여성은 포기를 모릅니다. 길건너 대로변 로손까지 다녀옴. 세븐일레븐 있었음 거기를 갔을 텐데 로손밖에 없었다.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지만 타마고산도 파워로 극복했다. 뭐 이런 미친 날씨가 다 있어. 샌드위치가 여기도 없으면 슬플 뻔 했는데, 다행히 있었다. 타마고산도랑 푸딩.. 그리고 오이시이 규뉴.. 겟. 푸딩엔 흥미가 없긴 하지만 궁금하긴 했다. 로손이 디저트로 유명하니까 디저트도 고를까 했는데 푸딩이 있어서 패스. 단거 많이 사봤자 못먹는다.

하 나는 도대체 사람들이 왜 자꾸 타마고산도 얘길 하는거지? 했는데 왜 그러는지 알 것 같다. 맛있다. 엄청 폭신하고.. 머스터드 맛도 있고. 별로 안 느끼하고 달걀 맛도 많이 난다. 우유랑 먹으니까 아주 그냥.. 크리미한 것이.. 한국에서도 팔아주십쇼..

의외의 수확 푸칭푸딩. 단맛이 강한데 괜찮았다. 괜히 많이 팔린 푸딩이 아니구나. 뒤집어서 예쁘게 먹고 싶긴 했는데 귀찮기 때문에 그냥 먹었다. 카라멜 맛 많이 남. 생긴 것도 귀엽고 식감도 귀엽다. 노트북으로 라운지에서 사진 보며 호로록 호로록 떠먹었다.

그리고 잠깐 낮잠 타임을 가졌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날씨를 확인해 보니 눈이 잦아들긴커녕 눈보라 경보에 폭설 경보가 추가되었다. 하하. 굉장하다. 저녁을 먹어야 될 것 같긴 한데 그리 배고프진 않아서 근처에 있는 웨스트 우동에 갔다. 무슨 작은 다리 같은 걸 건너갔던 것 같은데… 그 다리가 전부 얼어버려서 너무 위험했다. 사람들 거기에서 많이 미끄러지고 그랬다. 근데 어떤 분은 족히 10센치는 되어 보이는 힐 신고 거기 아주 가볍게 통과하심. 와우..

우동집에 도착. 미닫이 문으로 되어 있다. 앞에 가던 우동집 직원이 엄청 큰 박스를 들고 미닫이 문을 열려고 하길래 아무 생각 없이 뒤에서 열어주었는데… 뭔가 나한테 실례를 끼쳤다고 생각한 건지 즉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한사코 먼저 들어가시라고 하심.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이 분이 곤란해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모션.. 이었기 때문에 먼저 들어가서 문을 잡아줌.

주문도 그 분이 받아주셨다. 나는 튀김을 우동 국물에 빠뜨려서 눅눅하게 먹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오징어 튀김이 올라간 우동 하나랑 오니기리를 주문했다. 주문을 다 받고 아까는 고마웠다고 하심. 근데 나 처음에 잘 못 들어서 넹? 이러고 있다가 아 사키 사키 이러면서 알아들음. 물컵을 못 찾아서 정수기 앞에 얼쩡거리니 그분이 컵 꺼내주심. 저야말로 땡큐입니다. .

맛있는 우동. 특별하진 않지만 익숙하고 그래서 반가운 맛이다. 따끈따끈 넘어가는 게 좋았다. 너무 열정적으로 먹느라 입술 델 뻔했지만 튀김도 훌륭했다. 오니기리도. 가격 부담 없이+빠르게 먹을 수 있는 우동집.. 너무 소중하다. 먹고 있는데 soranji가 흘러나와서 더욱 좋았다. 핸드폰으로 못해도 삼백번은 들었을 텐데 일본 가게에서 들으니까 느낌이 색다르더라고.

그리고 하카타 역에 잠깐 갔다. 뒤쪽에 타코야키 봉고차가 온다는데 혹시 오셨나 싶어서. 타코.. 타코야키.. 이쯤 되면 그냥 ‘타코’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다 좋아하는 것 같다. 아무튼 늘 타코야키에 진심이란 소리다.

하카타역에 내려 걸어갔는데 이날은 바람이 너무 불고 추워서인지 안 나오심. 온 김에 하카타역 일루미네이션 한 번 더 보고 버스로 돌아가기로 했다.

도대체 하카타역 버스정류장이 어딜 말하는 거냐 하고 있었는데 바로 코앞이더라고. 고속버스 터미널처럼 버스 노선에 따라 타는곳이 다르다. 바닥에 몇번 버스가 거기 서는지 써있으니 번호 보고 서면 된다. 첨에 어랍쇼 이거 어렵겠는데? 했는데 하나도 안 어렵다.

그렇게 무사히 숙소로 도착. 뜨뜻한 물로 샤워. 잠옷 바지는 고무줄로 묶을 수 있는 거긴 한데 허리도 크고 길이도 길어서 이렇게.. 발뒤꿈치를 다 덮어버린다. 그리고 주루룩 흘러내릴까봐 허리춤을 붙잡고 다녀야 함. 좀 크긴 하지만 어쨌든 입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

예쥐가 자기 후쿠오카 갔을 때 맛있었던 집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고 한참 안 오더니 갑자기 나보고 좋은 소식 먼저 들을래? 나쁜 소식 먼저 들을래? 하는 거다. 나쁜 소식 먼저 듣는다고 했더니 좋은 소식 먼저 들으라는 거임(아니 왜 물어본 거냐고).
좋은 소식 듣겠다고 했더니만 가게 주소를 알려줌. 그리고 3초 뒤

나를 온탕에 집어넣었다가 곧바로 냉탕에 처넣어 버리는 예쥐.. 어쨌든 그 식당은 폐업했으므로 갈 수 없음. 슬프다. 망할 코로나. 예쥐랑 쪽지하면서 실실거리다가 잤다. 역시 헤비트위터리안과의 대화가 제일 재밌다. 밈 백과사전 수준이라 적재적소에 짤 쓰는 고독한 박명수방 사람들처럼 밈만 이용해서 대화 가능. 예쥐야 나 2월 기다린다? 여기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인다? (대충 1박2일 강호동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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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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