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4 계획
숙소 옮기기 / 바츨라프 광장 야경
개미 나오는 숙소에서 해방되는(?) 날. 호스트가 새로 제공한다는 숙소가 그다지 멀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나는 셀프 체크인이라고 써있길래 가서 하면 되겠구나 했더니 호스트가 조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알고보니 딸이 무슨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있다고. 그런 이유라면 얼마든지 괜찮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나 한잔 하기로 했다.


비가 조금씩 떨어졌다. 캐리어가 무거운데 오르막길이라 힘들었다. 내가 간 카페는 여기.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인 듯 하다. 내가 갔을 땐 딸래미로 보이는 애기가 같이 있었다. 주인장이 매우 친절하니 요 근처 카페 찾고 있다면 참고하길. 안쪽에는 야외 좌석도 있는 것 같다.
Cafe V zahradě
+420 601 502 253
https://maps.app.goo.gl/KfAvJEeL7164p54L8?g_st=ic

아무래도 단 걸 먹어야 겠다 싶어 무려 시럽과 크림이 뿌려진 팬케이크를 주문함. 빈속이라 라떼는 샷을 하나 뺐다. 사진만 봐도 달다.. 이거 먹으면서 한시간 정도 앉아있으니 호스트가 준비됐다고 집 앞에서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 숙소는 내가 집 전체를 다 쓸 수 있는 곳이었다. 집은 깔끔했는데 휑했다. 뭔가 방이란게.. 들어가면 폭 감싸주는 아늑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정말 휑.. 했다. 아니 혼자 있으니까 당연히 조용한 게 맞는데, 그 침묵이 뭔가 기묘하게 느껴졌다. 글로 다 쓸 수가 없는데 느낌이 진짜 이상했다. 그래서 큰 티비로 막 떠들고 시끄러운 영상을 틀어놨다. 방탄소년단 라이브 무대나 미쉘 선생님 영상 같은 거. 이렇게 뭘 틀어놓지 않는데 이상하게 여기는 이런 걸 틀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상했음…

뭘 할까 하다가 야경을 보러 나갔다. 생각해 보니까 바츨라프 광장을 제대로 걸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거기로 가보기로 했다. 원래는 성당에 가고 싶었다. 그 케밥집 옆에 있는 성당을 가려고 했는데 내가 열쇠 사용법을 헷갈려 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지체하는 바람에… ㅠㅠ
유럽 현관문은 대부분 열쇠로 연다. 키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은 진짜 헷갈림. 유랑에 이런 글이 있다. 이 글을 보면서 차분히 따라해 보면 열린다. 나도 이 글 보고 겨우 열었다. 호스트한테 문을 못 열겠다 연락했다가 기다리면서 이 글을 봤고, 바로 전화해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 방법을 알았다고 전달했다.
https://m.cafe.naver.com/ca-fe/web/cafes/firenze/articles/7434852?art=ZXh0ZXJuYWwtc2VydmljZS1uYXZlci1zZWFyY2gtY2FmZS1wcg.eyJhbGciOiJIUzI1NiIsInR5cCI6IkpXVCJ9.eyJjYWZlVHlwZSI6IkNBRkVfVVJMIiwiY2FmZVVybCI6ImZpcmVuemUiLCJhcnRpY2xlSWQiOjc0MzQ4NTIsImlzc3VlZEF0IjoxNjY3MDM0NjQ0MTI3fQ.46sfnYo-PXSiPSIHGzh_rIyq_6kfkA5nfOvp3EjnG0Q&useCafeId=false

트램역보다 전철역이 가까워 전철을 탔다. 스크린도어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내려서 걸으니까 국립박물관이 보인다. 조명이 들어와서 멋있다. 밤이지만 광장에는 사진찍는 사람들이 엄청 엄청 많다. (가방을 조심하자는 소리) 차도 많이 다닌다. 그 앞에는 동상이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선언문이 이곳에서 낭독됐다. 프라하의 봄, 얀 팔라흐 분신자살 등 체코 민주화 운동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광화문 광장처럼 광장 가운데는 보행자가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 어떤 탈것이 다녔는지 광장에 얽힌 역사는 뭔지 설명하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여기까지 나왔으니 나세마소(정육점 식당)에 들러서 저녁이나 사갈까 싶어져 그쪽으로 걸었다. 화약탑은 여전히 웅장하구만. 어두울 때 보니 더 멋있는듯? 옆에는 공연장이 있다. 멋있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간다.

쇼핑몰인 팔라디움 앞.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포장마차 같은 것들이 줄줄이 있고 중간에는 스탠딩 테이블을 뒀다. 짤짤이가 있으면 먹어야지 하고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는데 동전이 알맞게 있어서 (드디어) 소세지를 사 먹으러 갔다.


핫 와인도 있길래 먹을까 말까 하다가 나세마소에서 저녁 사서 맥주 마셔야지 하고 관뒀다. 내가 소세지 산 포장마차,, 사람 진짜 개많음. 왜냐면 냄새가 죽이기 때문이지요.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저렇게 소세지를 구워서 빵에 끼운 뒤 올려둡니다. 그럼 내가 주문한 것에 맞게 가져가면 됨. 소스는 셀프. 오른편에 펌프가 있다.

짜잔. 엄청 크다. 채소는 단 한 조각도 들어있지 않은 핫도그 되시겠습니다. 여기저기에서 그렇게들 사먹는지 알 것 같은 맛이었다. 진짜 마쉿어.. 먹으면서 나세마소로 걸어갔는데..

나세마소 도착하니까 넘 느끼해서 고기 생각이 싹 사라짐(……) 흠 그래도 사갈까 하다가 정말 생각이 없어서 돌아왔다. 훌륭한 산책이었다..^^


다시 중앙역으로 돌아왔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지하철 운행 중단됨.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체코말로 계속 안된다고만 하고 팻말에도 체코말만 써있어서.. 위에 영어 나오는 전광판 보고 안되는거 겨우 알았다. 한국이었음 벌써 트위터 보고 알았을텐데………….
암튼 다시 트램역까지 걸어가는데 사람이 진짜 미어터졌다. 그 사람들에 낑겨서 트램을 타고 집에 도착.. 했는데.
.
.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집에서.. “그 녀석”이 발견된 것이다.
——— 여기서부터…… 공익을 위해 작성한다……
개미냐고? 아니..
“베드버그”가 발견된 것이다………..
…
존나 숙연해짐
진짜 할 말을 잃음
개미의 습격을 한 차례 받고 깨달았음. 아 이 새끼들은 낮에 아무리 꼼꼼히 들여다봤자 하나도 소용 없고 밤에 갑자기 불 켜서 봐야 하는구나.
그래서 들어와가지고 불을 갑자기 켜서 벽이랑 침대 근처를 꼼꼼히 살폈다. 왜냐면 침대가 나무 프레임이어서 매우 의심스러웠거든.
그런데 침대 근처 벽에서 뭔가가 기어가는 거다. 당장 접사로 촬영하고 휴지로 냅다 눌러죽였음. 나는 베드버그의 본모습(?) 을 잘 모르므로 유랑에 이거 설마 베드버그 아니겠죠? 하고 올림. 이때까지만 해도 아닐 줄 알았다. 왜냐면 아니 뭐 날파리나 쪼끄만 벌레일수도 있잖아? 벌레는 많으니까? 내가 유난스러운 걸 수도 있으니까?
근데 씨발 보는 사람마다 다 베그버그라고 함. 학교 커뮤에도 올렷는데 벗이 흐린눈으로 지나가면서 봐도 베드버그라고…… 당장 짐싸서 나오라고 충고함 (댓글 달아준 분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진심 눈물이 날 것 같았음;
내가 분명히 알러지 있다고 말했는데. 그리고 호스트는 그걸 알고 있었고. 근데 개미 다음 베드버드냐? 개미때매 컴플레인 걸어서 바뀐 숙소에서?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
더 비극적인 건 옷을.. 지퍼백을 ’열어둔 채로‘ 책상 위에 뒀다는 거다. 하하. 하. 베드버그라는 유랑 선생님들과 벗들의 댓글을 보고 정신이 나가서 방 한가운데 멍하니 서있었음.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느낌이었음. 일단 정신을 차리고 에어비앤비 고객지원팀에 신고를 하고 사진을 전부 첨부해 보냈다. 호스트에 신뢰를 잃어서(..) 이쪽에 먼저 연락해야겠다 싶었다. 하얀 벽에 대고 찍어서 혹시 다른 데서 찍은 거 아니냐 하고 의심할까봐 사진 찍은 기계랑 위치까지 다 나와있는 화면도 캡쳐해 보냈다. (나는 여행가면 항상 카메라에 위치정보가 뜨게 설정한다)
여기서부턴 절망이 아니라 분노였다. 지퍼백을 열어뒀고 도저히 불안해서 옷을 가져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지. 유난이라고 한다면 유난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난 여행 내내 불안에 떠느니 완전히 제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큰 봉지에 옷을 전부 싸서 거기에 뒀다. 꼭 필요한 귀중품(기계, 여권, 돈, 핸드폰), 입고 벗은 지 채 10분도 안 되는 옷만 챙겼다. 침대나 소파에 눕거나 앉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침대 위에 옷을 벗어놓지도 않았고. 한국에 있는 엄마랑 통화하면서 하루 묵을 호텔을 예약했다.

Bolt로 택시를 불러 호텔로 갔다. 택시 이용내역과 택시비가 이메일로 찍혀서 일부러 이걸로 했다. 내가 숙소 때문에 쓰지 않아도 되는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체크인하고 도시세를 냈다. 도시세 영수증까지 챙기고 방에 들어갔다. 전날도 개미때문에 선잠을 자서 피곤한데 잠이 안 오는 거임. 그래서 그냥 밤을 꼴딱 샜다. 새벽이 되니까 에어비앤비 측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엔 한국 직원분이 연결됐다.
직원분께선 벌레 사진, 물린 사진이 있다면 그 사진도 보내달라고 하셨다. 다행히 물린 건 없는 듯해 벌레 사진을 다시 한 번 보냈다. 베드버그가 나와 호텔로 옮겼고 지금 호텔에 있는 상태라고 하니 호텔 영수증을 보내달라고 해서 호텔비랑 도시세 영수증까지 싹 해서 보냈다.

잠시 기다리니 이렇게 답장이 왔다. 전액 환불과 호텔비 일부 지원, 에어비앤비 예약 쿠폰 발급이 가능한지 확인해보겠다고. 단순히 벌레가 나와서 그런 건가? 아니면 내가 벌레 때문에 상담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또다시 같은 건으로 상담을 받게 되어 그런 건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렇게 밤을 새고 아침이 됐다. 호스트는 아침 7시가 되자마자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몇 년동안 이 일을 했는데 개미포함 단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며.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내가 본 것은 뭐지?
그러면서 지난밤 열쇠 때문에 자기한테 연락했을 때, 왜 다시 전화해서 오지 말라고 했냐. 이걸 설명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아니 이 얘긴 여기서 왜 튀어나오는 거지? 이걸 물어보는 저의가 뭐야? 물론 확인 차원으로 질문했을 수도 있지만.. 난 이 얘기가 여기서 튀어나온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연락한 건 이것과 전혀 무관한 일이고, 연락을 취하고 기다리는 동안 인터넷에 검색해 뒤늦게 문 여는 방법을 알았다. 딸 병원에 있는 걸 아니까 신경쓰이게 한 거 미안해서 헛걸음하지 말라고 한 거다. 그리고 개미랑 이 벌레도 확실히 내 사진첩에 있다~ 라고 따졌다. 그랬더니 이제까지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재방문 고객에게도 좋은 평을 들어왔고, 같은 아시아권에서 온 게스트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여기까지 읽고 답장을 안 했다.
그 숙소에 다시 돌아가 옷과 잡동사니들을 전부 처분해야 했기 때문이다. 옷은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몰라 낑낑대다(개무거웠다 진짜) 마침맞게 근처에 미화원 아저씨가 보이길래 뛰어가서 물어봤다. 자기가 끌고 있는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너무 상냥하기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키를 우편함에 넣어 체크아웃했다. 호스트랑 지원팀에 동시에 키를 넣어놨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보내니 지원팀에서 이런 답이 왔다. 그렇게 에어비앤비 전액 환불, 호텔 예약비 일부 지원, 쿠폰 발급까지 정말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Cherry G님,, Junhwa님,,, 따흑 고맙습니다. 정말로… 하.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진짜 든든했다ㅠ 호스트랑만 연락했으면 내가 말려들어갔을 것 같다. 그리고 개미때문에 상담 했던 거 너무 잘한 것 같다. 그 기록이 어쨌든 그쪽에 남아있었을 테니..
우야든동. 에어비앤비 이용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고객지원팀의 도움을 받자.
그렇게 난..
캐리어도, 속옷도, 양말도 없이 유럽에서 2주를 버텨야 하는 여행객이 되었다. 웃안웃..^^
환불을 받은 후 프라이마크에 가서 옷이랑 속옷이랑 이것저것 산 건.. 다음 포스팅에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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